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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용은 의술이다
작성자 | 박창준 소장
등록일 | 2006-04-17 10:43:25 조회수 | 13059 추천 | 0

 

미용은 의술이다

 미용실이나 이발소에 달려있는 원통형 기둥간판을 사인볼 또는 삼색등이라고 한다. 여기서 말하는 삼색이란 청색, 적색, 백색으로 구분되어 있다. 청은 정맥, 적은 동맥, 백은 붕대(신경이라는 주장도 있음)를 의미한다. 역사적으로 거슬러 올라가면 프랑스의 고등교육은 중세의 동로마제국시대 가톨릭 종교문화의 영향권에 있는 성당이나 수도원에서 가르쳤다. 1211년 교황의 명으로 파리 대학이 설립되었다. 1215년 대학의 학칙이 공식적으로 인가되었다. 파리 대학은 정규과목인 신학, 법학, 의학, 예술의 4개의 단과대학을 가지고 있었는데 의과대학에서 외과를 제외하였다. 당시의 의사들은 상류계층이 의료를 중심으로 했기 때문에, 고름을 짜내거나, 피를 닦거나, 피를 뽑거나, 상처를 꿰매거나, 외과수술을 하는 등의 어려운 일들은 이용사에게 맡겼다. 그럼으로 13세기 중엽 이후의 외과의사는 이용사가 담당했으며 이러한 현상은 영국이나 주변국으로 퍼져나갔다. 당시의 내과의사가 주축이 되었던 의과대학에서는 이용 외과 의사를 양성하는 속성과정을 개설하여 수료한 사람에게는 외과의사 자격증을 수여했다. 당시의 내과 의사들은 권위를 상징하는 긴 가운(gown)을 착용했으며, 이용사인 이용 외과 의사들은 작업에 편리한 짧은 가운을 착용했다. 이용외과의사(이용사)들은 자신의 위치를 확고히 하기위해 내과 의사들이 사용하던 표시와 동일하게 청색, 적색, 백색의 삼색 나선형 띠로 바꾸어 자신들의 권위를 일반인들에게 알리게 되었다. 지금과 같은 형태의 삼색원통형기둥 모양의 간판은 1504년 이용 외과 의사였던 메야나킬이 응급환자들의 눈에 잘 띄고 자신들의 권위를 표시할 수 있는 현재형태의 싸인볼(삼색등)을 착안했다. 당시의 이용사의 권위는 높았으나 18세기에 접어들며 파리 대학에서 외과를 정규학과로 채택함으로 근대적인 외과의사가 탄생하기 시작했다. 근대적인 외과의사의 탄생으로 이용사와 외과의사는 서로 다른 분야의 전문직으로서 분리되기 시작했다.

 이용사들은 자신의 전문성을 알리는 싸인볼(삼색등)을 계속적으로 사용하였기 때문에 현재에 와서도 이 • 미용업소를 상징하는 표식이 되었다.

 우리나라 최초의 이 • 미용사는?

안종호(이용사) - 1895년 고종의 단발령으로 최초의 이용사가 되었다.

오엽주(미용사) - 1933년 대한민국 최초로 화신미용실 설립. 일본에서 미용연구를 했음.

세계적으로는 이 • 미용의 경계를 두지 않고 있다.

우리나라는 이 • 미용이 법률적으로 상호 분리되어 있는 상태다. 보건복지부의 적극적인 판단을 기대해 본다.

㈜미용마케팅연구소 소장
비너세움사관학교   교장

대표 박창준

http://www.hairang.co.kr 

02-562-4567. 011-360-99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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